2023. 6. 7. 14:51ㆍ카테고리 없음
기찻길 옆에는 꼬마들이 된통 많았다.
입심 건 동네 청년들은 새벽 기차의 화통소리에 선잠 깬 어른들이 괜히 이부자락
펄럭여 가며 애새끼만 퍼질러 놨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청년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다.
꼬마들이 심통 사나운 말썽꾸리기들이긴 했지만 토끼새끼처럼 얼렁뚱땅 태어난 게
아니라, 정식으로 어머니의 배꼽을 통해 나온 애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기차 화통 소리 때문에 얼렁뚱땅 태어난 놈보다도 더 피맺힌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샛강 다리 밑에서 주워온 놈.
나는 여학생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나이가 될 때까지 이런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엄마, 날 누가 났어?"
"내가 났지 누가 나."
"어디로 났어?"
"배꼽으로."
어머니는 언제고 주저하는 법 없이 이렇게 명쾌하게 대답했지만 나는 어머니의 말이
반쯤은 거짓말일 거라고 믿었다.
"아빠가 기차 화통 소리 때문에 놀라서 일어나지 않았어?
아빠는 기차 화통 무서워하지 않았어?"
"그까짓 걸 왜 무서워해?"
이런 내 질문과 어머니의 대답은 거의 매일 계속되었다. 그래서 내 어린 가슴에도 내가
분명히 어머니 배꼽으로 태어난 정상적인 아이란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무리 내가 어머니 배꼽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주장해도 어른들은 여전히 나를
샛강 다리 밑에서 주워다 키운, 동냥아치들이나 사는 그런 더러운 곳에서 주워온 놈 취급을 했다.
입심 건 그들 말대로라면 우리 아버지는 가위를 쩔그럭거리며 다니는 곰보딱지 엿장수 영감이거나 굴뚝 청소하러 다니는 먹물영감, 땜장이 박씨, 외팔이 동냥아치, 철뚝 건너에 사는 곱추 따위였다.
거기에 대면 우리 어머니는 더 형편무인지경이었다.
사거리에서 교통순경처럼 팔 흔들며 춤추는 미친년이기도 했고, 공설시장 모퉁이에서 쓰레기 청소하는 할마씨이기도 했다. 떡장수 아줌마나 미나리밭에서 코 박고 죽은 동냥아치, 채소장수 째보아줌마, 남의 걸 채뜨려 먹고 사는 삼신벙어리 따위였다.
어른들이 이 가련한 꼬마에게 그처럼 악담을 퍼붓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대개 나에게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국민학교 다니는 꼬맹이한테 피해를 입는다는 게 말 같지도 않다고 생각할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꼬마치고 나한테 코피 터지지 않은 애가 없었다. 그 시절만 해도 검정 고무신짝으로 먼저 콧잔등을 후려쳐서 코피만 쏟게 해 버리면 이기는 때였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나 같은 꼬맹이는 상대방에게 맞아 코피가 나면 그 코피를 손바닥 가득 묻혀서 땅바닥에 쓱쓱 문대어 모래가 잔뜩 묻은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따귀를 올려붙이고 만다.
그렇게 되면 녀석의 볼때기에는 내 귀여운 손자국이 닷새쯤 남아있게 되고 녀석은 그때부터 감히 도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치고 패고 물고 할퀴는 어른들의 그 악받치는 싸움질, 못된 것은 죄다 동원해서 싸움의 모법답안이나 만드는 것 같은, 그런 치사한 어른들과 다른 점이었다.
요즘 꼬마들이야 존경하는 부모님의 수법대로 싸움질을 해야만 효자 소리를 듣게 되지만 그 시절에는 맞고 들어오는 놈,
무조건 지는 놈, 순박한 놈만 존경받던 시절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잘 사는 나라라고 생각했었다.
선생님도 그렇게 가르쳤고 책에도 그렇게 씌어 있었고 우리 부모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 알기를 똥친 막대기처럼 알았다. 오른쪽 뺨을 맞거든 왼쪽 뺨도 내놓으라니.
그런 걸 믿는 녀석이 나한테 걸렸다간 헌집 벽 털리듯, 천당 갈 힘도 없게 두들겨 맞을 게 뻔했다.
지금 내 나이 스물 두 살, 아직도 하나님에 대해선 감정이 썩 좋지 않은 나이지만 그래도
그때보다는 비교적 후하게 점수를 주는 나이가 되었다.
하나님껜 죄송한 얘기지만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죄다 털어놓겠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건 십자가에 발가벗고 있는 예수에게 내가 이 다음에 커서 우연히 부자가 되면 고급 복지로 옷을 해입힐 생각을 한 것에 대해선 치부책에 꼬박꼬박 적어 뒀다가 내가 재수없게 천당에 가거든 꼭 괜찮은 자리를 내주셨으면 합니다.
하나님, 더 솔직히 얘기한다면 나는 예수의 잉태와 출생, 성모 마리아의 숫처녀 임신,예수의 기적, 그리고 부활과 승천 따위에 대해 아직까지 의혹을 품고 있습니다.
이게 죄가 되나요?
내가 배꼽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내게 있어서 공갈쟁이로 전락할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하나님은 언제 한번 나타나셔서 뭔가 털어놓으셔야 할 겁니다.
사내 나이 스물 두 살이면 하나님과도 한판 붙어 보고 싶은 나이가 아닙니까?
어쨌든 하나님은 지금부터 내가 털어놓는 내 마귀 같은 행위에 대해서 조금만 눈을 감아 주셔야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해 존경심을 철회하지 않는 길이며, 그것만이 내가 하나님을 헐뜯지 않는 유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야 세상일을 무엇이든 다 알고, 어디든 다 계시다니까 빤히 아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터무니없이 이 나라의 대통령도 될 거라고 믿었다.
그 당시에 이미 별을 일곱 개나 달고 다녔으니까. 비록 미군들이 버린 깡통을 오려붙인 것이긴 했지만. 사실 나는 왕국을 세워서 황제가 되고 싶었지만 이 나라에 그런 제도가 없었고 황제학교나 왕초학교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 녀석...... . 한자리는 떼어놓은 당상이다. 저 귀를 봐요. 저런 쪽박귀는 난생 첨입니다.
아주머니는 태후자리 앉게 생겼습니다. 내 말이 틀리면 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부처님도 저 아이를 보면 화들짝 놀랄 겁니다. 소문내지 말고 키우시오. 인물은 소문 내서 키우면 꺾입니다.
멋대로 키워도 큰 인물감입니다.
그때 가서 내 말이 맞으면 이 객승을 잊지나 말아 주시오."
그러면서 중은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렸다.
나는 다듬잇돌 위에 앉아서 그 중의 뻔질거리는 머리에다 고무총을 쏘고 싶었다.
나는 왕이 되고 싶지, 그까짓 대통령을 하기 싫어."
내가 큰 소리로 볼이 메어 외친 소리였다.
어머니는 후다닥 뒤주를 열고 양은 그릇으로 하나 가득 쌀을 퍼내어 중에게 공손하게 내밀었다.
"태후가 주신 이 공양은 부처님께 꼭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중은 또 한번 합장을 하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