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28. 15:55ㆍ카테고리 없음
나는 가끔 돈을 주고 때를 민다.
그래서 때밀이 아줌마와 친구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팔이 아픈 고질병이 생긴 이래,
나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며 온 몸을 노곤노곤하게 해 주는 때밀이 아줌마가 나는 좋다.
아무리 낯선 때밀이 아줌마일지라도 한번만 때를 밀고 나면 10년 지기가 된다.
나는 한 때 목욕탕에 와 때를 미는 여자들을 경멸한 적이 있다.
얼마나 할 짓이 없으면 자기 몸을 남에게 맡길 수 있을까, 싶었다.
"병원비 들이는 것보다 열 배 백 배 절약이야. 때를 미는 건, 스트레스를 날리는 지름길이니까."
내 주변에 목욕탕 가는 걸, 공원 산책 나서는 것보다 더 쉽게, 그리고 좋아하는 친구가 내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팔이 아프다고 했더니 적극적으로 때밀이 아줌마와 친해질 것을 권했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 나도 처음 때밀이 아줌마 앞에 눕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때밀이 아줌마와 친해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내면의 실제 모습을 감추며 살아가는가. 처음 때를 밀면서도 그랬다.
절대로 처음으로 때를 미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웃긴 일이다. 그러나 웃긴 줄 알면서도 쓰잘데 없는데 자존심을 내세우며 사는 게 바로 나다.
아무튼 나는 그 후로 피곤하거나, 혹은 기분이 꿀꿀하거나, 모처럼 놀아도 되는 날이면 목욕탕을 찾는다.
처음에는 단골 때밀이 아줌마를 찾아 동네 목욕탕만 갔다.
그런데 동네 목욕탕에 가면 불편한 게 많았다. 일단 아는 여자가 많다는 것이다.
나보다 나이도 많은 이웃 아줌마가 보는 앞에서 때를 미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피곤했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쓸 일이 많은 세상인데...
쉬기 위해 찾는 목욕탕에서조차 남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때부터 목욕탕 순례를 나섰다.
운전을 못하니 주로 택시를 타고 다녔다. (목욕 가방 들고 버스 타기는 좀...)
그러면서 서울 시내 목욕탕 때밀이 아줌마 들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눈 셈이다.
한 때는 그들을 주인공으로 단편 한 편쯤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너무 뻔한 스토리인 것 같아 아직 한 편도 못 썼다.
오늘은 서울 시내에서 가장 크다는 목욕탕을 찾아 갔다. 하림각.
그 곳에 가서도 때를 밀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곳 때밀이 아줌마들의 모습을 면밀히 살핀 다음
그냥 찜질만 하고 왔다.
'자존심이 상한 얼굴, 신경질적인 언사, 자괴감, 귀찮음'
"때 밀 손님 많아요?"
라고 물은 나의 단 한 마디를 받아 드리는 그들의 얼굴 속에 들어 있는 언어를 나는 감지했다.
이해가 되면서도 단골도 아닌 내 몸에 그들이 뿜어낼 세상을 향한 독기가 두려웠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나를 배부른 돼지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들을 비판하자는 게 아니다.
나의 일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을 하자는 이야기다.
나는 때밀이 아줌마를 경시한 적이 없다. 위에 분명 친구라고 하지 않았는가.
적어도 내가 만난 때밀이 아줌마들은 철저한 직업정신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들을 존중했다.
직업적인 병 때문에 고통스런 나의 온 몸을 그들의 손이 닿으면 거뜬해지는 기분...
그건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그런데 오늘 만난 아줌마들처럼
'내가 이런 일이나 하고 있을 사람은 아닌데...'
얼굴에 가득 찬 그들 내면의 소리를 읽을 때....이해가 되면서도 이해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