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25. 10:13ㆍ카테고리 없음
바둑 기량의 품격을 아홉 단계로 나누어 각각의 단계에 운치있는 이름을 부여한 것으로 오늘날에는 프로기사 단위(段位 ; 初단∼九단)의 별칭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기원 후 5세기 초에서 6세기 말에 이르는 약 1백70년간을 중국의 역사에서는 '남북조(南北朝) 시대'라고 합니다. 이 무렵 6세기 전반기에 남조의 황금시대를 이룬 사람이 바로 양(梁)나라의 무제(武帝)였습니다.
양무제는 유학 불교 형이상학 등에 조예가 깊은 학자이기도 했으며 바둑에 관해서도 특기할 업적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양무제 자신이 직접 명령을 내려 기품(棋品)을 교정시켰던 것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남북조시대 남조의 역사를 기록한 '남사(南史)'를 보면, "바둑을 매우 좋아하고 즐겼던 양무제는 '유운'이라는 신하로 하여금 바둑을 잘 두는 고수들의 기보를 '품정(品定)'토록 했다. 거기에 포함된 고수가 2백70명이나 되었다" 고 합니다.
'품정'이란 많은 기보를 놓고 기풍, 수순, 역량 등을 검토해 일정 수준에 올라 있는 기보를 선별한 후 그것들을 다시 우열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심사방법을 통해 바둑 고수들의 기품(棋品)을 1품부터 9품까지 9단계로 분류하고 각각에 이름을 붙인 것이 바로 '위기 구품'으로서 가장 높은 경지가 1품, 가장 낮은 단계가 9품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프로기사의 계급 또는 등급을 初단부터 九단까지 하고 있는 것에 반해 대만에서는 지금도 '단' 대신 '품'이라 하면서 순서도 '단'과는 거꾸로 우리의 初단을 9품, 九단을 1품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위에서 소개한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기예의 단계를 아홉 단계로 나누고 최고의 경지를 九단으로 한 것은, 서양에서는 옛날부터 '12'를 '완전숫자'라고 했던 것처럼, 고래로 동양에서는 '9'를 '완전한 숫자'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프로기사 '十단'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일본에는 '十단'이 있다고 잘못 알고 계신 분이 더러 있는데, 일본의 '十단'은 산케이(産經)신문이 주최하는 타이틀의 이름일 뿐입니다. 일본 바둑계 7대 타이틀 가운데 랭킹4위죠. 위기구품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단계
▶ 初단(9품)의 별칭은 수졸(守拙)
1)사전적인 의미는 ‘세상살이에 졸렬함을 고치지 않고 자기 분수를 지킨다’는 의미이고,
2)바둑계의 의미는 ‘바둑을 모르던 사람이 배우기 시작하여 1년이나 2년후에 좀 강해지면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시절이 온다. 이 시절이 '일년이야'이다.’
▶ 二단(8품)의 별칭은 약우(若愚)
1) ‘어리석어 보인다, 어벙해 보인다.’
2) ‘겉으로 보기에는 어리석은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나름의 생각과 지모(智謀)가 있으며 어느 정도의 기본기도 갖추고 있는 수준입니다.
겸허를 배우고 인내를 훈련하는 기간입니다. 겸허와 인내는 승부의 기초입니다.’
▶ 三단(7품)의 별칭은 투력(鬪力)
1) ‘싸움의 기세가 강하다.’
2) ‘어느덧 힘이 붙어 싸워야 할 상황에서는 싸울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입니다.
용기를 배양하는 과정입니다. 실력의 고하를 떠나 결국은 용기 있는자만이 험난한 강호무림에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 四단(6품)의 별칭은 소교(小巧)
1) ‘작은 재주를 갖는다.’
2) ‘비로소 소박하게나마 기교를 부릴 수 있게 된 단계입니다. 전국을 살피는 안목이 좀 부족하기는 하나 부분적인 처리나 국지전에서는 테크닉을 구사하면서 스스로 바둑의 묘미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때로 방황하고 좌절하게 되지만, 그런 시련과 아픔을 통해 점점 성숙해집니다.’
▶ 五단(5품)의 별칭은 용지(用智)
1) ‘지혜를 쓴다.’
2)‘상당히 지혜로워졌습니다. 큰 이득을 위해서 작은 손해쯤은 감수하는 궁량도 생겼고, 전술의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둑판 전체를 연관 시키는 전략을 구상합니다.
승부에 대한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해 새로운 세계를 향해 모험에 찬 먼 여행을 떠납니다.’
▶ 六단(4품)의 별칭은 통유(通幽)
1) ‘두루 통한다.’
2) ‘바둑의 심오한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바둑의 진경(眞境)을 음미할 수 있는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이며 바둑을 통해 그윽한 진리의 세계에서 황홀경을 경험한 단계인 것입니다.
사물과 현상의 본질에 접근했고 승부의 요체(要諦)도 터득을 하게 되었습니다.’
▶ 七단(3품)의 별칭은 구체(具體)
1) ‘온전히 갖추다.’
2) ‘바둑의 기술적인 면을 마스터했을 뿐아니라 이제는 바둑판 앞에 앉게 되는 순간이라면 언제 어느 때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판의 바둑을 통해 조화와 중용의 정신을 구현하는 차원 높은 세계로 올라간 것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아마도 마지막 단계일 것입니다. 옛날 일본에서는 '상수(上手)'라고 불렀습니다.’
▶ 八단(2품)의 별칭은 좌조(座照)
1) ‘앉아서도 훤히 보인다.’
2) ‘여기서부터는 사람의 노력만 갖고는 안되며 기재(棋才)를 타고난 일부 선택된 사람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경지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척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의 온갖 변화, 삼라만상이 생성기멸(生成起滅)하는 우주의 섭리를 내다볼 수 있게 되어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어는 순간 문득 제행무상(諸行無常), 승부의 허무를 깨닫습니다.
옛날 식 표현으로는 '준명인(準名人)'입니다.’
▶ 九단(9段)의 별칭은 입신(入神)이라 하고,
1)사전적인 의미는 ‘기술이 숙달하여 영묘한 지경에 달함’.
2)바둑계의 의미는 ‘九단(1품) ; 입신(入神)
가히 신(神)의 경지인 것입니다. 승부의 허무까지를 초월했습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고 설명할 말도 없다 하겠습니다.
이제는 사람의 지혜,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세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둑이 융성하기 시작했던 16∼17세기 일본 막부시대 때는 당대의 최고수를 '명인(名人)'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시대에 '명인'은 한 사람밖에는 존재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오늘날로 말하자면 한 시대에 한 사람에게만 九단을 인정했던 셈입니다.’
※ 위와 같은 비교가 근래에는 각 단계가 무너져, 입신(9단)과 수졸(1단)의 대결에서도 그 결과가 예측불허인 경우가 많아졌다합니다.
우려할 상황인지 바람직한 현상인지는 각자 판단해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각 단계별 격차가 줄어드는 이유가 저단위들의 왕성한 학구열 때문이라면,
우리의 바둑실력은 매우 높은 수준이 되어 남들이 넘보기 힘들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바둑인 스스로 바둑은 우주의 축소판이라고 할만큼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그 소우주에 한번 접해보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