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장불입
전라북도 익산군 색마면, 미륵산의 끝자락 음란골 뒷산에 낙장사란 작은 절이 있고,
그 절엔 불입스님이란 분이 계신다.
지금부터 나는 그 스님의 탄생 설화 및 낙장 불입교란 잊혀진 종교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일제 말기 음란골에는 집안 대대로 토호인 최부자집이 있었고,
최부자는 슬하에 방년 18세된 언년이란 외동딸이 있었다.
한편 그 마을에는 나이 사십이되도록 장가를 못간 강쇠란 도박꾼이 있었는데,
그가 주로하는 도박은 고스톱과 개구리 경주에 돈을 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도박 매너는 치사하기 이를데 없어 예를 들자면 고스톱을 치다, 상대방이 할 차례가 되면 일부러 재채기를 하는 등으로 놀라게하여 상대방이 패를 떨어 뜨리면,바로 낙장불입이라고 외치는 수법으로 돈을 딴후, 주말이 되면 마적단들이 운영하는
개구리 경주장에 가서 한구멍에 몰빵하는 것을 즐겼다.
이러한 강쇠는 언감생심 언년이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자빠트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달빛이 유난히 밝은 어느 날 저녁,
언년이는 마을 뒷편 성황당 인근에 달구경을 나왔다가
성황당 추녀끝에 걸려진 목각 음경을 보다, 갑자기 음욕이 치솟아 치마속으로 손을 집어 넣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시커먼 손이 나타나 언년이의 입을 막으며 덮쳐 드는 것이었다.
그 후 누구에게 당한지도 모르는 언년이는 배가 불러오자,
애를 떼기 위하여 수차례에 걸쳐 양잿물을 먹었으나,소용이 없었고 산달이 되자 혼자 성황당에 들어가 사내 아이를 낳았다.
18세 처녀의 몸으로 애를 낳게된 언년은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여 아기와 동반 자살을 결심,아이의 목을 조르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강쇠란 놈이 뛰어들며 '낙장불입' 이라고 외치면서
'안돼, 이 아이는 내 아이야'라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보름날 저녁 언년을 덮친 자는 바로 강쇠였으며,
결국 어쩔수 없는최부자의 허락하에 언년과 강쇠는 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당시 죽기 직전 구조된 그 사내 아이가 바로 불입스님이다.
어린 시절 노름꾼 아비 강쇠에게서 스님이 보고 자란 것은 대충 이러했다.
강쇠는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광주리를 이고가다 고구마 한개라도 떨어뜨릴라치면 번개같이 달려가 '낙장불입'이라고외침과 동시에 입안에 집어 넣는가 하면, 어린시절 불입스님의 호주머니에서 꼬깃 꼬깃 접어둔 지전이라도 한장 떨어지면
'이놈아, 낙장불입이다' 하면서 울고 있는 불입스님을 뒤로하고 개구리 경주장으로 뛰어 가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낙네가 애기를 업고가다 떨어뜨려도 '낙장불입'이라며 애기를 떠매고 곡마단에 팔아 넘기는 짓까지 서슴치 않았다..
그렇게 낙장불입을 신봉했던 강쇠는 육십세 되던 해,
처가집 부엌칼까지 팔아 목돈을 마련,개구리 경주장에서 4번 개구리를 축으로 돈을 걸었는바, 갑자기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져 출발과 동시에 4번 개구리의 머리에 맞아 죽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에 분노한 강쇠는 개구리 경주 주최측인 마적단에항의를 하였으나,돌아온 대답은 '낙장불입'이었고, 이에 강쇠가' 이런 법이 어디 있냐'며 계속 대들자 마적단들은 강쇠를 끌고 가 24시간 동안 몰매를 가하였고, 이 사건의 후유증으로 강쇠는 오른쪽팔과 왼쪽 다리를 못쓰게 되었다.
그후, 폐인이 되어 살아가던 강쇠는 술만 취하면 육십세란 자신의 나이에도 불구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라고 통곡하곤 했다.
그때마다,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꼭 써먹는 불입 스님은 '낙장불입이지 뭐'라고 대꾸하곤 했단다.
.스님의 나이 이십세 되던해,
일찌기 터득한 낙장불입의 묘리를 전파하기 위하여
인간이 만든 불합리한 제도와 불공평하게 만들어진 법칙에 대한 저항을 쉽게 포기하는 삼십여명의 신도들과함께 음란골을 중심으로 낙장불입교란 종교를 세우기에 이른다.
낙장불입교도들은 개구리 경주 ,빈대 경주등등 각종 경주 도박에 있어 빈대가 출발 직후 죽거나.주최측에서 억지로 술을 먹인 개구리가 주로를 거꾸로 가는 등으로 불상사가 발생시, 이에 항의하는 관중들에게 '낙장불입'이라고 외치면서 집단으로 몰려가 폭력으로 진압하는 댓가로 주최측에서 나누어 주는 일정한 금액과, 개구리가 죽는다는 정보를 미리 빼내어 도박꾼들에게 팔아 넘기는 방법으로 거액을 축적하였고 그 자금을 바탕으로 나날이 교세를, 확장 한때 그 신도가 백만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과거 강쇠가 행한 난동들은 당연시 되어 전 백성들의 생활수칙이 되었으며, 전국 방방곡곡 '나무 낙장불입보살'이란 염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도솔천에 계시던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만든 법칙에 있어 절대 진리란 없거늘, 낙장불입이라는
기괴한 논리하에 인간의 도전 정신과 개혁정신을 무력케하는 저들을 멸하리라' 하시면서 자희 선녀와 마담 동자를 음란골에 파견,
사시미를 휘두르며 극렬히 저항하는 낙장불입교도들을 토벌하였고
그후 낙장 불입교는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후 불입스님은 자신의 허황한 논리를 반성, 대오각성후 결국 머리를 깎고 불문에 귀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비오는 어스름날 밤 음란골에 가면
'나무 낙장불입보살, 나무 낙장불입보살..'이란
낙장불입교 원귀들의 독경소리가 들려 온다고 한다.